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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certs/Opera

그리제이 @ 래틀과 해니건과 함께하는 “늦은 밤” 연주회

디지털 콘서트 홀에서.

제라르 그리제이: 소프라노와 연주자 15명을 위한 《문턱을 넘기 위한 네 곡의 노래들》 (1996–98)

바바라 해니건, 소프라노
베를리너 필하모니커 단원들
지휘: 사이먼 래틀 경

2016년 12월 10일, 베를리너 필하모니

그리제이의 유작. 죽음을 소재로 한 네 편의 시에 음악을 붙인 연가곡. 첫째 노래부터 각각 천사의 죽음, 문명의 죽음, 목소리의 죽음, 인류의 죽음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고, 마지막 노래에는 에필로그로써 자장가가 붙어 있다. 작곡가에 의하면, 이 자장가는 ‘잠들게 하는 것이 아닌, 깨우는 것’이라고. 들어보면 그 뜻을 느낄 수 있을 것.

소프라노의 목소리가 격정적으로 상승할 때, 앙상블은 팽팽한 고무줄이 끊기듯 긴장을 놓는 양상으로 자연스럽게 연출되는 드라마. 두 번째 노래에서 소프라노가 읊조리는 가사. 전형적인 스펙트럼 음악을 비껴간, 하행하는 동기 중심의 간결한 작법까지. 그저 놀라운 작품이다. 예전 그의 대표작들의 화려하게 꽉 찬 음향에 작별을 고하고, 작품 전체를 덮은 희박한 공기는 죽음의 쓸쓸한 이미지와 어울려 청자를 벼랑 끝까지 몰고 간다.

해니건은 예전 돌아다니던 음원에서 들었던 것보다 한결 더 능숙하고 노련한 모습이 인상 깊었다. 단원들의 연주 역시 무난한데 소리가 조금만 더 앞으로 나왔으면 더 좋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