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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certs/Opera

2018 사운드 온 디 엣지 III – 밐스 앤드 맽치: 워-크스 퍼홈-드 바이 아시안 인스트루먼트

후지쿠라 다이: 쇼와 오보에를 위한 Breathing Tides (2010), 한국 초연1
이성현: 생황과 피아노를 위한 Hon: (2018), 세계 초연2
김희라: 대금, 생황, 거문고, 장구와 현악 삼중주를 위한 REDO (2011), 한국 초연3
호소카와 도시오: 쇼와 현악 사중주를 위한 Landscape V (1993), 한국 초연4
백성태: 생황, 플루트, 클라리넷, 피아노와 현악 삼중주를 위한 Towards Silence (2018), 세계 초연5
시어도어 위프러드: 가야금과 현악 사중주를 위한 Nonghyun (2017), 한국 초연6

1나카무라 하나코(쇼), 전민경(오보에)
2한지수(생황), 이영우(피아노)
3정소희(대금), 한지수(생황), 김준영(거문고), 김인수(장구), 김지윤(바이올린), 임진아(비올라), 박고운(첼로)
4나카무라 하나코(쇼), 함지민 김지원(바이올린), 라세원(비올라), 허철(첼로)
5이근재(생황), 이인(플루트), 김은경(클라리넷), 지유경(피아노), 김지윤(바이올린), 임진아(비올라), 박고운(첼로)
6지애리(가야금), 함지민 김지원(바이올린), 라세원(비올라), 허철(첼로)
3–6지휘: 백윤학

2018년 9월 13일, 일신홀

후지쿠라의 Breathing Tides는 두 악기의 절제된 음향 속에서 피어나는 하나의 순간을 위해 존재하는 작품인 듯싶다. 이렇게 멀티포닉스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곡은 항상 어디서든 실수가 나오지 않을까 조마조마한데 혹시나가 역시나라고, 오보에의 실수 연발. 두 악기가 서로 만나 한데 섞이려면 악기들이 정밀하게 통제되어야 할 텐데, 연주자의 기량에 비해 곡이 요구하는 기교의 수준이 너무 높았던 것 같다. 뭔가 되려는 듯하니까 끝나버린 곡의 길이도 아쉬움을 남겼다.

그 뒤 공모를 통해 선정된 이성현의 곡은 한마디로 과했다. 악기들이 서로 미세한 자극을 주고받도록 구성했다고 하는데, 시종일관 시끄럽고 불쾌하게 울려대니 도대체 뭐가 미세한지 도통 알 수가 없다. 현대음악적인 여러 기법들은 작품 안에 녹아들지 못하고, 그저 사건들로만 남아 계속 튀었다. 거기에 구태의연한 20세기 초 프랑스 느낌의 화음을 끼워넣은 건 끔찍했다.

김희라의 REDO는 재실행 명령을 음악적으로 나타내어 작은 제스처들의 반복이 끊임없이 나타나는 작품이다. 컴퓨터 작업에서 얻은 아이디어는 괜찮았으나, 이도저도 아닌 결과물은 무미건조하고 매력이 없었다. 또한 편성이 좀 억지스럽다는 인상, 그러니까 국악기들을 쓰기 위해서 국악기들을 쓴 게 아닌가 싶었다. 왜 이 악기들을 같이 연주해야 하는지? 작품 안에서 답을 찾기 힘들었다.

아... 그래서 인터미션 전까지 박수를 한 번도 안 쳤다.

호소카와의 작품은 쇼의 음색과 하모닉스의 유리 같은 울림이 뚜렷한 구분 없이 겹쳐지며 눈 덮인 화산의 풍경을 그려내고 있었다. 작곡가의 이름값이 있어서 그런지 오늘 연주된 작품들 중 가장 좋았다. 연주 시간 동안 자기 세계를 보여주는데 성공한 유일한 작품.

백성태의 곡은 공모로 선정된 두번째 작품. 그렇게 발상이 특별하거나 새로울 것은 없었지만, 잘 정돈된 무난한 곡이었다. 반복되는 같은 음이 여러 텍스처를 입으면서 모습을 달리하게 되는 3악장이 들을 만했다.

마지막 가야금이 들어간 작품은 그냥 클리셰였다. 매끈했지만, 궁금하거나 흥미롭게 느껴지는 부분은 전혀 없었다. 앞 작품들 때문에 이미 기대도 없어진 상태였고, 머리도 비워질 만큼 비워졌기에, 가야금 연주나 감상하자는 마음으로 들었다.

아시아 악기들로 연주되는 작품들이라면 훨씬 더 다양한 악기들과 편성으로 풍부한 음악을 들려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작품들의 질도 시원찮을 뿐더러 겨우 국악기들과 쇼가 편성에 포함된 식이었기 때문에 굉장히 실망스러웠다. 연주회의 내용에 비해서 부제가 너무 거창했던 것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