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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certs/Opera

최우정의 창작 오페라, 《달이 물로 걸어오듯》

최우정: 《달이 물로 걸어오듯》 (초연)

김재섭, 수남
정혜욱, 경자
엄성화, 검사
김지선, 마담
윤성회, 미나
이혁, 형사 외
최보한, 국선변호사 외
이두영, 딸기장수 외

앙상블 PINI
대본: 고연옥
연출: 사이토 리에코
지휘: 윤호근

2014년 11월 23일, 세종문화회관 세종 M씨어터

프로그램을 안 샀기 때문에 공연 전 가지고 있던 정보는 오늘 나오는 가수 이름과 초반 줄거리, 인터미션이 없다는 것뿐이었다.

대본은 약간 20세기 한국문학 같았다. 사실주의적이고 질척하고 구질구질함. 경자를 제외한 다른 캐릭터들은 모두 이성으로 이해 가능한 범위에서 행동한다. 특히 수남의 감정 변화는 아주 설득력 있고 자연스럽게 묘사되었다. 반면 아버지를 계모와 이복동생에게 뺏기고 식모살이를 했다는 수준에 불과한 경자의 살인 동기는 다소 납득하기 어려웠다. 경자라는 인물 자체가 심중을 알 수 없는 성격을 가진 것으로 그려지기 때문일 듯.

가수들이 대본을 전부 노래하는 건 아니고 중간중간 대화가 섞여 있음. 가창은 안전지향적이고 듣기에 나쁘지 않았다. 발음에도 거의 문제 없어서 오히려 자막은 감상에 방해 되는 느낌이었다. 나중에는 의식적으로 무대에 집중하려 했음.

관현악 파트는 다양한 양식을 섞어서 작곡되었다. 짙은 미니멀리즘의 냄새가 나는 부분도 있고, 행진곡의 느낌이 나는 부분도 있고, 심지어 동요 같은 부분도 있었다. 관현악을 통한 묘사는 대부분 다소 직설적이라 느껴질만큼 대본과 붙어서 잘 떨어지지 않았다. 이것을 '언어와 음악의 결합'이라고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내게는 흥미를 깎는 요소였다. 현대음악의 재미는 의외성에서 오는 것이기도 하니까. 윤호근의 지휘는 빠지는 데 없이 비교적 충실한 반면 입체감은 약간 떨어졌다.

관중이 예상보다 많이 찼다. 특히 내가 앉은 2층은 빈 자리가 많지 않았음. 별로 진지하게 들으러 온 관객들이 아닌 것인지 관람예절은 썩 좋지 않았다만. 여튼 온전하게 만족은 아니더라도 그럭저럭 재미있게 본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