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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감 잡담 파편들

스트리밍의 시대다. 작년에는 여유가 없어도 너무 없어서 클음을 거의 안 들었기에 그냥 멜론, 지니를 옮겨다녔다. 그리고 올해 봄에 처음 스포티파이 1년 끊을 때는 그때 한창 듣던 팝을 많이 듣겠다는 생각이었다. 멜론, 지니가 앱이 한국적으로 못생겼다는 거 빼면, 가사도 띄워주고 가요 듣기엔 나쁘지 않았다. 반면 팝이나 클음은 정리도 더럽게 안 되어있고, 결정적으로 양에서 너무 밀린다. 아무튼 스포티파이는 여러모로 음감도 편하고, 접근성도 좋고, 앱도 멀쩡하게 생겼고, 대체로 서비스가 훌륭하다. 태그는 조금 난잡하게 되어있는 게 단점. 그래서 이제 그냥 거기에 있는 건 거기서 먼저 듣고 따로 사거나, 안 사거나 한다. 꼭 사겠다 싶은 음반은 많이 줄었고, 오페라 블루레이 정도나 모으고 있다. 현음 작곡가들로 검색 돌려보면 옛적에 절판돼서 엄청 비싸게 중고로만 나오는 것들도 간간히 찾을 수 있다.

스트리밍을 쓰니까 좋은 건, 내가 굳이 돈을 비싸게 안 줘도 들을 수 있는게 많아지니까, 고전음악 듣기가 훨씬 편하다. 난 옛 연주는 정말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따로 돈 주고 살 생각이 없는데, 기악이랑은 다르게 아무래도 성악 쪽은 옛날 사람들이 잘한다는 말이 맞더라. 후크나 콜로라투라가 중독성 있는 벨칸토 오페라 아리아 레퍼투아, 유명한 이름들 위주로 많이 듣는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나 현사, 브람스 피아노곡들 같은 것들도 옛 연주, 현대악기, 연주 포르테피아노 연주 오가면서 듣는다. 딴짓 하면서 듣기에 참 좋다. 상대적으로 관현악곡들은 여전히 옛날 연주 잘 안 듣긴 한다. 샤이 베토벤, 브람스, 전에는 살 생각이 있었는데 이제 듣기만 하고 영원히 안 살 것 같다.

곧 서울 집을 비우고 이사를 가게 된다. 그래서 박스에 옮기기도 할 겸, 작년 겨울에 하드 날려먹은 거 얼마나 립을 다시 해야 하는지 볼 겸, 음반들을 꺼내보니 스포티파이에 없는 게 1/4–1/3은 되는 것 같았다. 영상물은 당연히 없으니까 제치고, CD도 ECM, 겨울 & 겨울, 에디션 RZ, 이런 건 다 없다. 콜 레뇨나 베르고도 거의 절반 정도는 없다. 아무래도 올해 안에 다 못할 것 같다. 이런 취미생활보다 중요하게 할 일들이 많아서 우선순위가 밀리기도 하고.

아빠가 새로 살 집에서는 놀려뒀던 스피커랑 싸구려 턴테이블을 연결할 생각이라고 했다. 이제까지 피해왔던 현음 바이닐을 사게 될지도 모르겠다. 해마다 바이닐 판매량이 증가 추세라고 하지만, 난 바이닐 싫어한다. 난 음반 사고 나서는 계속 찾는 건 디지털 데이터뿐이다. 바이닐은 립하기도 어렵고, 관리하는 것도 까다롭고, 무엇보다 왜 좋은 CD나 파일을 놔두고 그런 미디어 자체에 집착하는지 알 수가 없다. 그렇다고 싫어하는 거랑은 별개로, 내가 눈여겨보던 작품들이 바이닐로만 나온다면 그걸 안 사서 못 듣는 건 말이 안 되니까. 배송 문제가 남아있겠지. 만약 사게 된다면 유럽에서 여기까지 오면서 그게 남아날까 무서울 것 같다. 제발 그냥 CD로 내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