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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cordings

블라우: Angels

리자 림: Wild Winged-One (2007), C조 코넷과 입천장에 넣어 부는 호루라기를 위한 독주곡
리처드 에어스: 피콜로 트럼펫, E♭조 트럼펫, B♭조 트럼펫 두 대를 위한 No. 37C – Sjonnie Kurzak (a broken soul) ascends (2002)
레베카 사운더스: Neither (2011), 더블 벨 트럼펫 두 대를 위한 이중주곡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하스: … Einklang freier Wesen … (1995/96), 블라우에 의한 4분음 플루겔호른을 위한 독주판
칼 러글스: 약음기를 끼운 금관을 위한 육중주 Angels (1921, 개정 1960), 트럼펫 네 대, 호른, 트롬본을 위한 버전
아가타 주벨: Wounded Angel (2012), 더블 벨 트럼펫을 위한 독주곡
마틴 스몰카: 버켓 뮤트와 4대의 B♭조 트럼펫을 위한 pianissimo (2002)
마르테인 파딩: 더블 벨 트럼펫 독주를 위한 23 Sentences & Autograph (2003)
마르코 블라우: Deathangel (2012), 피아노 공명음과 소라 껍데기 두 개, 부케호른, 더블 벨 트럼펫, 아버지의 목소리, 주변 소음의 다중 트랙 녹음
지미 로울스: The Peacocks (1975), 더블 벨 트럼펫과 프리페어드 피아노를 위한 재즈 발라드

마르코 블라우, C조 코넷 (림), 피콜로 트럼펫 (에어스), 더블 벨 트럼펫 (사운더스, 주벨, 파딩, 블라우, 로울스), 4분음 플루겔호른 (하스), C조 트럼펫 (러글스), B♭조 트럼펫 (스몰카), 부케호른과 소라 껍데기들 (블라우)
마르쿠스 슈빈트, E♭조 트럼펫 (에어스), 더블 벨 트럼펫 (사운더스), C조 트럼펫 (러글스), B♭조 트럼펫 (스몰카)
네이선 플랜트, B♭조 트럼펫 (에어스, 러글스, 스몰카)
랄프-베르너 코프, B♭조 트럼펫 (에어스, 러글스, 스몰카)
크리스틴 채프먼, 호른 (러글스)
브루스 콜링스, 트롬본 (러글스)
미힐 브람, 피아노 (블라우, 로울스)

WER 67812

현대음악 앙상블 무직파브릭의 트럼펫 연주자, 마르코 블라우는 더블 벨 트럼펫을 고안한 사람이기도 하다. 사분음(quarter tone)을 연주할 수 있으며, 또한 밸브를 통한 벨 간의 빠른 전환이 가능하여 음색의 변화가 용이한 이 트럼펫을 위해 동시대의 작곡가들이 여러 작품들을 작곡해 왔다. 그 덕택으로 블라우를 비롯한 연주자들은 현대음악이 트럼펫이라는 악기를 위하여 탐구해온 폭넓은 사운드스케이프를 이리저리 뛰어넘을 수 있게 되었다.

대부분 천사라는 소재로 느슨한 연결고리를 갖고 있기는 하지만, 이 음반에 실린 작품들은 극도로 이질적인 어법으로 쓰여 있다. 림의 Wild Winged-One의 부드럽게 헤엄치는 선율이 거세게 픽픽거리는 바람 소리에 의해 중간중간 끊겨버리는 효과는 연극적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에어스는 서로 다른 선율과 리듬을 겹치고 찢어지는 음색을 이용하는 식으로 브라스 음악의 전통을 장난스럽게 비틀어 소품 No. 37C를 완성하였다. 실린 작품들 중 가장 앞서 작곡된 러글스의 Angels는 부드럽고 따뜻하면서도 단순하지 않은 조성감을 가지고 있어, 어쩌면 이후 작곡가들이 음악에 조성을 접목하는 방식을 예견하는 것 같기도 하다. 신경질적인 주벨의 Wounded Angel과 웅변하는 듯한 파딩의 작품 23 Sentences & Autograph도 재미있다.

특히 아름다웠던 작품은 사운더스의 Neither와 블라우가 직접 쓴 Deathangel이다. 마치 깊은 동굴 속에서 고요하게 퍼지는 듯한 불안한 울림이 사운더스의 작품을 지배하고 있는데, 블라우와 슈빈트의 경이로운 연주가 자칫 까다롭게 들릴 수 있는 음향조차도 완벽하게 조절하여 곡이 가지는 가능성을 극대화하였다. 블라우의 아버지가 호스피스에서 소녀의 임종을 지켜본 옛날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Deathangel은, 양의 뿔로 만든 민속 악기 부케호른과 소라 껍데기 같은 특이한 악기를 더해 잔잔한 노스탤지어를 그려냈다.

음반을 마무리하는 끈적한 재즈 발라드 The Peacocks에서는 두 벨에 각각 다른 종류의 약음기를 끼우고 피아노의 현에는 은박지를 감싸 현을 때릴 때마다 타악적인 소음이 나게 했다. 뮤트가 끼워진 트럼펫은 찌그러진 듯한 음색이고, 은박지가 떨리면서 나는 소음은 잔잔하게 퍼지는 스네어 드럼이나 지직거리는 잡음을 연상케 하여, 그런 효과들은 내게는 마치 옛날 레코드를 올렸을 때 나는 로우-파이 녹음의 모사처럼 들리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