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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cordings

라둘레스쿠: 피아노 소나타 제2번과 제5번 및 현악 사중주곡 제5번

새로 올라오는 글들은 조금 더 가벼워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빨리 쓰려고 하거든요.

호라치우 라둘레스쿠 Horațiu Rădulescu

피아노 소나타 제2번 “being and non-being create each other” (1991)
현악 사중주곡 제5번 “before the universe was born” (1990–95)
피아노 소나타 제5번 “settle your dust, this is the primal identity” (2003)

스티븐 클라크 (1, 3)
JACK 사중주단 (2)

mode 290

검색해봤더니 영어 리뷰가 최소 세 편 뜬다. 중요한 신보라고 많이들 생각했던 모양. 그 중 William Dougherty의 글은 특히 귀한 정보를 많이 담고 있으니 궁금하신 분들은 가서 읽어보시라.

라둘레스쿠의 음반은 가뜩이나 몇 종 나와있지도 않은 데다가 그나마도 절판된 게 많아서 구하기가 어려운데, 미국 현음 레이블 mode에서 피아노 소나타 및 현사 전곡을 내준다고 해서 반갑게 되었다. 내가 아는 바로는 피아노 소나타 2, 3, 4(연작임)가 cpo 레이블로 한 장 있고 아르디티 사중주단의 현사 제4번이 edition RZ에서 나와있다. 아르디티 음반은 프레스토에서 사면 되고 cpo 음반은 조금 더 구하기 어려운 것 같다.

피아노 소나타 두 작품 사이에 현사를 끼워넣은 특이한 구성으로, 각 작품의 연속성을 찾기는 쉽지 않다. 그나마 피아노 소나타 두 곡은 얼핏 들어보면 비슷하게 들릴 지 몰라도, 소나타 제2번은 피아노에서의 스펙트럼 음악의 가능성을 탐구에 집중된 곡이라면, 소나타 제5번은 그뿐 아니라 루마니아 민요의 조성적 선율이 느껴지며, 폴리메터를 사용하여 잘게 쪼개진 복잡한 리듬이 특징적이다. 현사 제5번은 작곡가의 개성이 가장 과격하게 드러나는 작품으로, 미분음 하모닉스와 확장 주법으로 꽉 찬 29분 동안의 아방가르드 스펙터클이다.

라둘레스쿠의 작품에 붙여진 제목들은 대부분 도교 텍스트(경전?)의 구절이다. 그냥 동양인인 나한테는 그저 오리엔탈리즘 뽕에 취한 것 같아보이지만, 작곡가는 이 텍스트를 자기 음악에 꽤 진지하게 사용한 듯하다. 현사 제5번의 29개의 1분짜리 섹션마다 제목을 붙여놨는데 텍스트가 적용된 방식을 찾기는 쉽지 않다. 각 텍스트의 의미, 리듬이 음악적으로 활용되었다는데 그걸 진지하게 탐구할 시간, 노력은 도저히... 아무튼 시작과 끝이 그래도 분명한 편이고 길이 또한 대략 정해져 있기 때문에 섹션 자체는 충분히 인지하며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다들 아는 얘기 한 번 해보자면 피아노의 경우 평균율 12개 반음의 스케일에 묶여있기 때문에 한 음정에서의 이상적인 배음을 실현하기는 힘들다. 반면 현을 위한 작품들에서 작곡가는 변칙 조율(scordatura)를 적극 활용하여 두 개 이상의 현이 한 음정의 배음으로 구성될 수 있도록 이 가능성을 극대화했으며, 그 결과로 볼륨을 올리면 아주 화려한 음색의 카오스 세계가 펼쳐지게 된다. JACK 사중주단은 놀라운 테크닉으로 이 숨막히는 곡을 굉장히 단정하게 연주해주었다. 몇 단원들이 교체됐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후에도 이런 퀄리티를 유지해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