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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cordings

아브라함센: let me tell you

한스 아브라함센 Hans Abrahamsen

소프라노와 관현악을 위한 let me tell you (2013)

바바라 해니건, 소프라노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
지휘: 안드리스 넬손스

올해 초 출반된 음반이다. 아직 사진 않았지만, 해니건 씨를 봐서라도 사겠지. 이거 하나만 넣는 것보다 비슷한 편성의 작품으로 커플링해서 나왔으면 좋았을 텐데. 30분 남짓한 길이는 CD 1장 분량으로는 너무 짧기도 하고.

작품은 노래 일곱 곡으로 구성된 연가곡이다. 처음 접한 건 2013년 말 베를린 필 초연이었다. 그때는 무난하게 예쁜 곡이구나, 정도의 감상이라서 몇 번 듣고 그냥 잊어버렸다. 여튼 그건 나만의 생각에 불과했는지 (주로 영미권) 평론가들의 반응은 굉장한 호평 일색이었고, 2016년 그로마이어를 비롯한 큰 상도 몇 개 받았다. 이런 성공에는 헌정자 바바라 해니건이 유럽, 미국 돌아다니면서 열심히 불러준 것도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다시 여러 번 들어보니 여전히 작품은 잔잔하게 예쁘고, 대단한 걸작은 아니라는 생각도 같지만, 내가 오판했다고 느끼는 점도 있다. 공기처럼 가볍고, 녹아내릴 듯 부드러운 관현악 텍스처가 소프라노 음성을 감싸는 솜씨는 아주 뛰어나다. 작곡가가 조성을 사용하는 방식도 괜찮았다. 미분음과 함께 애매하게 흐려지는 조성은 이전까지 아주 잠깐씩 고개만 내밀다가, 마지막 노래에 이르러서 전면에 등장하며 작품을 정리한다.

가사는 음악 평론가로도 알려진 폴 그리피스의 동명의 소설에서 가져온 것으로, 그 유명한 <햄릿>의 등장인물 오필리아의 대사로만 이루어져 있다. 주인공은 기억을 반추하고, 사랑을 노래하다가, 마지막에는 눈 속을 거니는 떠돌이가 된다. 성악 기법 중 특기할 만한 것은, 몬테베르디에 의해 고안된 stile concitato로써, 하나의 음절을 짧은 음가로 쪼개어 반복함으로써 인물의 흥분된 심리를 표현하는 것이다.

다른 누구보다 가수의 역할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이 작품은 굉장히 운이 좋았다. 해니건의 음색은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리고, 극적인 표현도 탁월하다. 기술적으로도 전체에 걸쳐서 요구되는 긴 호흡의 프레이즈부터, 다섯 번째 노래의 화려한 콜로라투라 기교까지 깔끔하게 소화한다. 굳이 흠을 잡자면 pppp로 길게 이어야 하는 음 처리가 완벽하진 않은데, 그것까지 바라는 건 무리겠다.